고양이

   어제 밤에 일찍 쇼파에 누워 주무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하셨다. 어머닌 그 말을 내게 전했고 나보고 아이스크림을 사오라 해 옷을 주섬 챙겨입고 나왔다. 

  메로나와 몇몇 아이스크림을 꺼내고 가격을 보며 좀 언짢아져서 나오는데 슈퍼 문 앞에 왠 고양이가 있었다. 날 보고 도망가는듯 싶더니 내가 쭈그리고 앉아 부르니 냉큼 달려왔다. 그리곤 아마 내가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동안 신나게 먹다가 내가 나타나 미처 다 먹지 못한 빵을 다시 먹었다.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나는 관심없다고 느낀듯이 빵을 먹는데에만 열심이었다. 내가 자신을 해칠만큼 강하지 않다는 걸 잘도 알았나 보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음에도 민감하게 귀와 머릴 돌렸지만 정작 내가 쓰다듬어보는 손길도 말 그대로 무심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래도 먹는 내내 계속 주위를 둘러보는것이 괜히 안쓰러워 얼마 안 남은 빵을 다 먹을때까지 옆에 쪼그려 앉아 기다려주었다. 검은색에 회색 줄무늬가 간간히 들어간게 세련된 털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빵을 다 먹고 나선 아이스크림이 들어있는 나의 검은 봉지에도 살짝 관심을 보이더니 말았다.  난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by valadares | 2009/11/06 16:49 | 트랙백 | 덧글(1)

마음계란

  어제 일을 하다가 한 선생님이 삶은 계란을 주었다. 면허학원을 갈때 저녁을 먹을 시간이 없어서 요깃거리로 잘 됐구나하고 주머니에 넣었다. 학교에서 나와 걷다가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삶은 계란이 잡혔다. 둥글둥글한 느낌이 좋아 손에 안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가다가 힘이 좀 들어갔는지 한쪽이 깨졌다. 부들부들했던 계란이 거칠어졌다. 아무도 없는 공원 가운데 서서 깨진 계란을 쳐다보다가 껍질을 까고 먹었다. 목이 좀 막혔다. 아름다운 것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얼른 먹어버렸다. 


  학원 차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생각보다 많이 이르게 도착했다. 학교에서 일찍 보내준 덕에 십여분이 넘게 기다려야할 판이었다. 어쩔까하다가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랠 들으며 걷기로 하고 주변을 걸었다. 예전에 살던 집과 가까운 곳이었다. 당시 깡패들이 많이 온다던 오락실이 있던 곳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가게가 들어서 있었고 편지를 부쳤던 기억이 있는 조그만 구멍가게 앞 우체통은 그대로, 몇번 머릴 깎았던 이발소도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배달음식을 받아갈 때나 명절때마다 아버지께 오던 택배를 받으려 기다리던 무용학원이 있던 곳은 다른 가게로 바뀌어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의 입구에 서서 사진을 찍어보았다. 느낌이 묘했다. 자주가던 슈퍼는 잉크충전소로 바뀌어 있었고 약간 멀었던 코끼리 슈퍼는 조이마트라는 곳으로 바뀌어 있었는데 얼마전 내가 콜라를 사 마셨던 곳이었다. 그땐 미처 몰랐다. 갈때마다 향 냄새가 나던 그 슈퍼가 바뀌어, 과외를 갈때마다 지나가던 곳이었다니 그땐 향냄새 같은 건 전혀 없었다. 도로가 빵빵 뚫려 예전 거리의 이미지와 짜맞추기 좀 어려웠다. 차 시간에 늦을까싶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 코끼리 슈퍼가 있던 곳과 내가 학원차를 기다리는 곳은 불과 몇 걸음 되지 않았다. 보편적인 노래를 들을때 즈음이 13분, 차가 오는 예정시각은 17분으로 6분짜리 이 노래가 끝나기전에 오겠구나 싶었는데 역시 그랬다. 노래의 끝자락부분에 차가 왔고 난 차에 오르며 운전기사 아저씨께 인사를 했지만 여전히 인사를 받지 않았다. 이유가 뭘지 생각해봤는데 아마 저녁먹을 시간즈음에 나 하나를 태우러 차를 끌고 나오는게 애꼽을 수도 있고 뭐. 잘 모르겠다. 어쨌든 항상 그렇다. 나를 태우려 차를 세울땐 반대쪽 창을 보고 있다. 난 거기에 대고 인사를 해도 아저씬 별말 없고, 라디오 소리는 차안에 가득차도록 볼륨이 크다. 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출발해서 난 휘청거린다. 학원을 끝낼때까지 계속 인사해볼 생각이다. 

  여전히 마찬가지로 딴때보다 더 웃는다.

  운전은 이제 꽤 익숙해져서 재미있다. 

  마음을 잘라내는 것 자체로는 별로 아프지 않은데 후에 그 잘린 단면에 맞닿는 여러가지들이 쓰리다. 

  아침잠이 조금 더 늘었다. 
  

by valadares | 2009/11/04 10:55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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